왕상 19:9-10_동굴 속의 엘리야                                        2011.8.12. 금요기도동역자모임
9. 시내 산에 도착한 엘리야는 한 동굴 속에 들어가 밤을 지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야,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10.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저는 언제나 제 힘을 다해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제단을 부수고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죽였습니다. 살아 남은 예언자는 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저까지 죽이려 합니다.” <쉬운성경>
 



호렙산에 도착해서 엘리야는 굴속에 들어가 하루 밤을 지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왜 여기에 있느냐?” 두 가지 중 하나의 의미겠죠?
-‘왜 동굴 속에 있느냐?’  아니면 ‘왜 호렙 산에 와 있느냐?’
잠시 후에 나오라고 하시는 것을 볼 때 왜 동굴 안에 있느냐는 말씀인데, 동굴은 피할 곳이죠. 비와 동물과 추위를 피할 곳. 엘리야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피하지 않았습니다.

왜 여기 있느냐는 하나님의 물음은 엘리야의 심리적, 영적 상태를 묻는 질문입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닙니다. 이어서 하실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를 훈계하는 부모의 질문)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 예수님)

● 엘리야나 나나, 오십보 백보
10절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위로 후에도 여전히 두려움과 절망이 담긴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 중에 응답받고 위로 받지만 여전히 불안한 우리와 똑같습니다.
450, 850:1의 승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을 하나님이 하실 일을 생각하지 못한다. 두려움과 불안함이 눈을 가려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절망적인 것 뿐이다.(물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빠진 베드로)
-절망의 이유를 볼 것인가, 하나님으로 인한 희망의 이유(감사제목)을 찾을 것인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위대한 인간은 없다. 위대한 일에 사용 받는 순간이 있을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누구나, 부족하고 연약하고 모자란 나도 하나님에 붙잡혀 살아가면, 성령충만해서 살면 위대한 삶을 살게 된다.

● 세미한 음성
하나님은 엘리야를 나가게 해서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크고 강한 바람을 보게 하시고, 지진이 나고, 불을 보게 하셨지만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불 후에 세미한 소리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바람과 지진과 불은 보통은 하나님의 나타나실 때 따라오는 현상이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은 안 계셨다. 그 후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세미하다는 말은 원어의 뜻으로는 조용하고 부드럽다는 말이고, 한자말로는 작고 약하다는 말이다.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수 있는 소리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 힘을 얻어 새로운 사역에 임한다. 
-하나님의 음성은, 계시는, 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그 사건은 놀랍고 신기한 일과 함께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이 본질이 아니다. 우리가 만약 확실한 믿음을 위해서 어떤 놀라운 증거를 구하고 있다면 초점이 조금 잘못 맞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위해서는 사람에 따라 확실한 증거, 놀라운 일을 보여주기도 하신다. 하지만 그래도 그 놀라운 일이 본질이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똑똑히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인의 삶, 요즘 우리의 삶은 얼마나 복잡하고 놀랍고 시끄럽고 말이 많은가? 하나님의 음성을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을 정도다. 우리의 삶의 고민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는 소음이 된다. 우리는 엘리야처럼 세미하든지 우렁차든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 그곳에 생명이 있고 길이 있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고 놀라운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불안 앞에서는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볼 때에 이 순간 후에 엘리야는 다시 하나님의 사역에 열정을 쏟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직전까지도 엘리야는 두려움과 불안함에 절망의 끝에 있었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어려움, 절망, 불안 그것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가 알던 알지 못하던 하나님은 내게 좋은 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이것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내가 모르지만, 지금은 몰라서 힘들고 답답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지금은 어렵고 힘든 이 문제가 오히려 감사의 제목이 되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배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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