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그리스도인



2004년에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정직하겠습니다'라는 주제로 정직한 감리교인, 정직한 그리스도인 운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주제가 새겨진 스티커를 선풍기 커버 가운데에 붙여두었는데, 그 선풍기를 사용할 때마다 보여서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한 교단이 주제로 삼아 운동을 벌인 주제였으니 중요한 것이겠지요. 기독교인은 정직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아도 괜찮은가 스스로 질문을 해보면 어떤 답이 나오시나요? 저는 처음엔 당연히 정직해야지 생각이 들고, 믿음과 정직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기독교인이 얼마나 정직하지 않았으면 그런 운동을 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직에 대해서 성경은 뭐라고 말할까요? 믿음의 지혜를 가르치는 잠언 3:32에 보면,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라고 하여 정직한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또 잠언 12:22에도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라고 하여 거짓을 따르지 않고 진실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신 십계명의 내용에도 "거짓증거하지 말라"(출 20:16)고 하셨고, 가나안 진입을 앞둔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세가 전한 말씀인 신명기의 6:18에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정직이 복이 된다는 말이고 하나님의 백성은 그 길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에는 초대교회 때 거짓말을 했다가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행 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성경을 볼때 그리스도인이 정직해야 하는 것은 말하나마나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종교 신뢰도 조사에서는 교회가 늘 가장 낮은 순위로 나타나고, 사람들은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더하다고들 하고, 각종 비리 사건에는 기독교인이 빠지지 않는 것일까요? 교회 지도자들이 깊이 반성하고 책임을 느껴야합니다. 더불어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사람들에게 위로와 축복의 약속만 제공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교회의 목표가 양적인 부흥이 되면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직(正直)은 한자말인데, 바를 정, 곧을 직으로 씁니다. 바르고 곧다는 말입니다. 솔직(率直)하다는 말과 비슷한데, 솔직은 거짓이 없고, 숨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별 차이가 없는 말이겠지만 저에게는 두 단어의 어감이 좀 다릅니다. ‘솔직’은 숨기지 않는다는 의미가 더 크게 느껴지고 ‘정직’은 책임지는 자세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모든 일을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은 솔직한 것이고, 옳은 길을 가려고 노력하고, 그 일로 생기는 결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책임있게 행하는 것이 정직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속이지 않는다고,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한다고하며 있는 그대로 말해버립니다. 그리고 그 뒷일은 나몰라라 합니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 있는 그대로 말해버리는 것이 좋을까요? 잘못한 일을 물을 때, 솔직하게 내가 그렇게 했다고 인정만 하면 정직한 태도일까요?


정직에는 옳은 길을 따른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이 들어있어서 솔직하기 보다 정직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정직은 자기의 이익을 따르지 않고 옳은 길을 따릅니다. 정직은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 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고전 13:6) 정직은 하나님의 뜻을 기준 삼아 사는 것이며, 그 길을 선택해서 자신이 희생할 일이 생기더라도 기꺼이 가는 것입니다. 정직은 그저 거짓말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정직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정직하지 않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교인일 뿐입니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처럼 보여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정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정직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손해보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용기가 있어야 정직할 수 있습니다. 정직해야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만 얘기해서 우리가 정직해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정직한 삶이 나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알 때 가능한 일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습니다. 더 큰 유익은 천국의 보화를 쌓게 됩니다.(눅 12:33) 정직은 세상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영혼과 영생에 대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유한한 세상의 일과 영원한 영혼의 일을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은,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죽어서도 좋은 것을 갖겠다는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일이 다가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 가치를 알고 세상에서 영원을 살겠다는 믿음입니다. 세상의 가치가 천국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가치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정직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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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그리스도인


 ‘뱀파이어 크리스천Vampire Christia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Dallas A. Willard가 사용한 용어입니다. ‘뱀파이어 크리스천’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자가 되어 순종하는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람처럼 보이지만 흡혈귀가 사람이 아니듯이 성도처럼 보이지만 ‘뱀파이어 크리스천’은 온전한 성도가 아닙니다.

 교회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감동시키기는 커녕 안믿는 사람들보다 더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해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교회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처음 교회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오셨고, 죽으셨고, 다시 사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주목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좋아 보였고, 부럽고, 동참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의 역사에서 교회는 세상에 빛이 되어 왔습니다. 의료와 교육, 복지 사업을 통해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알려줬고,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많은 역사의 순간에서 교회의 전한 바는 억눌린 사람들에게 진정한 복음이 되었습니다. 약자로 희망 없이 살던 인생에 자유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속물스럽고 더 탐욕스러우며, 예수님의 기준이 아닌 세상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 이하의 집단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뱀파이어 크리스천 교회가 딱 맞는 이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 시대의 상식보다 못해서일까요? 그럴리가요.


이 현상은 심각합니다. 이것은 교회 역사에 있었던 박해와는 다른 일입니다. 박해는 믿음 때문이었고, 그 믿음을 지키느라 받은 것이지만, 지금의 문제는 오히려 교회가 믿음의 길이 아닌 길로 가기에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조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믿는자들이 모두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도 없는 것이고 예수님이 전하신 천국복음에도 없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욕먹었던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돌아보면 문제는 명확합니다. 교회가 그 근본 가치인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입으로만 외치기 때문입니다. 또 신앙생활의 열심이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서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한 수단이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일 너머를 보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만나기 어렵습니다.


교회의 가치와 기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시선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와 목회자들과 교인들에게 좋은 것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큰 교회는 교인이 많은 교회고, 그 교회의 목사님이 큰 목사님이고, 그런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면 어쩐지 자부심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요? 

'교회만 그러냐? 다른 종교는 더하다.' 이렇게 변명할 수도 있습니다. 더한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종교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시대가 악해서 그런것일까요? 아닙니다. 다른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어떤 종교든 기득권이 되면 타락했고, 번영기를 거치면 그 생명력은 희미해졌습니다. 그것이 종교의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을 이루고 형식화되고, 사람들의 요구에 맞게 세속화되고... 결국 종교를 타락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죄성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생겨먹었습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주면 그곳에 많은 수가 모이고, 그것이 더 가속화되면서 결국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그것이 그 종교의 가치가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까지 인정이 된다면,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요? 비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얘기는 사실 교회좀 다닌 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고, 심지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할수 있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 질문이 남습니다.

1517년, 501년 전에 독일에서 마르틴 루터를 통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새로운 교회인 개신교가 생겼습니다. 500여 년이 지난 지금 개신교는 숫자와 크기, 물질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고 있고 어떤 이들은 그런 흐름에 반하여 교회가 개혁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일반적으로 종교가 500년이 지나면 개혁해야 할 만큼 타락하게 된다는 얘기도 합니다.


새로운 교회가 필요할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저는 여전히 지난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고, 지난 시대의 시스템 안에 있습니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새로운 교회, 새로운 목회를 꿈꾸며 길을 찾아야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기존의 것을 반대한다고 옳은 것이 아니고, 지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는다고 선이 아니라는 생각도 합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다만 그 흐름이 일어나는 쪽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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