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에 대해서


 나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그게 가능하다면 미래가 이미 미래가 아닌 현재 혹은 현재의 과거가 되고, 그렇게 시간은 뒤엉켜 버린다. 그런데 내 현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

두번째 이유는 그게 가능하다면 세계 곳곳에서 시간 여행자들의 목격담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없다는 점이다.

세 번째 이유는 시간이란 경험하는 존재를 통해서만 인식되는 것인데, 그 경험하는 존재인 인간에게 과거는 지나가 기억이 돼 버렸고,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으니 현재 밖에 경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즉 다차원적 시간이 있다는 생각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전혀 과학적 지식도 없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은 보잘 것 없는 근거와 결론이지만, 지금 내 생각은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맞는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진실은 얼마든지 내 생각과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재미있게 본다. 그 소재 자체가 참 매력적이다. 미래에 가서 나의 미래 모습을 확인하고, 과거로 가서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참 흥미롭다. 시간여행 기술을 나 혼자만 독점할 수 있다면 즐거운 일이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시간여행물은 그렇게 즐기면서도 시간여행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모순인가 아닌가?', '사실 영화나 드라마의 많은 부분들은 현실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즐겁지 않은가?'하는 생각도 든다.


 시간여행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다가 시간여행 소재를 소비하는 인간의 심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굳이 과거로 가지 않아도 기억 속에 바꾸고 싶고 후회하는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그 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이런 것 말이다. 후회는 실수를 수정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한다. 하지만 과거로 가서 그 때 그 실수만 살짝 수정해서 지금을 좋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대머리를 부르는, 참 쉽게 살고 싶은 생각이다. 공짜로 과거의 실수가 고쳐지기를 바라는 도둑 심보다.


 사람은 과거로 가지 않아도 이전에 현재였던 시간 속에서 여러번 반복한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 배움을 지금 현재에 적용해서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시간에 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우리는 매일 매일 비슷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매일 매일의 경험 속에서 깨닫고 배우고 성장하지 못한다면 헛사는 인생이 아닐까? 몸이 늙어서 소멸을 향해 갈 뿐 매일 매일 한치의 자람도 없는 갖혀버린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말이 쉽지, 경험에서 좋은 답을 얻어내어 중요한 것을 깨닫고, 그 깨달은 것을 삶에 적용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시간여행물에서는 과거를 바꾸면 현재가 바뀐다고 설정한다. 그리고 과거의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바꾸면 그로 인해 큰 변화가 나타나거나 그 일로 인한 혼란이 야기된다. 과거로 가서 현재를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날로 먹으려는 도둑 심보를 빼고, 과거를 현재로, 현재를 미래로 바꾸면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경험을 통해 배우고 그 배움을 현재에 적용해서 미래를 바꾸는 일은 무척이나 에너지가 많이 들지만 꼭 해야 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점이다.

역사를 통해 배움을 얻어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 일이, 말로는 쉬운데, 행하기가 그리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삶에서나 한 사회의 역사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일이다.





* Legend of Tomorrow(시간여행 미드)와 '시그널'을 같이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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