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5장 5절_엘리사와 여호람.pptx

엘리사와 여호람, 나아만
 
3. 이스라엘 왕
- (5-7절) 아람왕의 요구를 전해듣고(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달라는 요구) 자기의 옷을 찢으며 낙망함./ 두려워 떰.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이것은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우리들이 외치는 익숙한 소리다.(내가 어찌하리요!!!!) 
그렇다면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일들에 직면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역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1> 선물로 가져온 물건
은 10달란트 / 342kg   금 6천개=2달란트 / 68.4kg  옷 10벌 / 귀한 것 => 예의를 갖춘 선물이며, 아람의 부를 보여준다.

2>이스라엘 왕은 여호람 / 이름이 왜 없을까? / 여호람이 초라한 이유-엘리사가 하나님의 능력을 가졌으므로-내 모습은 어떤가?
아람과 이스라엘의 관계 / 전쟁을 하던 적대관계였으나, 당시는 비교적 평온한 상태
선전포고로 여긴 이유 /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의 왕이 군대장관을 보내 병을 치료해주라고 하니, 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니 전쟁의 빌미로 여기는 것도 이해됨,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안목이 없음.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없음. 즉 믿음 없는 사람이 사건을 보는 상식적인 눈. 

=> 어려운 상황에 답은 없고 스트레스만 쌓인다.

한계를 극복하라!
(자연히 스트레스는 없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1. 개인의 한계를 극복하라.
 - 성품의 한계 / 성숙
 - 능력의 한계 / 도전과 계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 /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나

2.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라.
 - 사랑의 한계
 - 미래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의 한계

4. 엘리사
이스라엘왕이 두려워하고 있는 때에 하나님의 사람(성숙한 영성의 사람)은
- (8절)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라고 함.
위기라고 생각되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게 되리라고 믿고 확신함.
- 엘리사의 나아만을 향한 지시는? (10절)“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 그러면 네 몸이 깨끗하여 지리라”

3>비교되는 두 사람
 - 정치 군사의 지도자와 영적인 지도자, 세상을 보고 일을 보는 기준과 눈이 다르기 때문에 달리 봄.

여호람에게는 없고 엘리사에게 있던 것 
1. 자신감 / 성령충만한 상태(하나님의 영에 감동한 상태) 유지할 수 있는 방법 / 기도, 말씀, 찬양 -> 즉 예배(은혜의 자리) 사모
2. 영적분별력 / 하나님이 하시는 일, 사탄이 움직이는 일 / 역시 기도말씀찬양, 예배, 은혜의 자리

힘들고 괴롭게 하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두 사람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가? (온전한 믿음)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여, 늘 성령충만함으로 자신감을 소유하고, 영적분별력을 가지는 삶. 그리고 성품과 능력과 영성에 있어서 매일매일 한계를 넘어 성숙해가는 삶

기도제목 : 내가 극복하고 자라가야 할 내 성품과 삶의 습관의 장애물을 내려놓자.


살전 5장 16절_특별한 능력, 감사.mm

왕상 19:9-10_동굴 속의 엘리야                                        2011.8.12. 금요기도동역자모임
9. 시내 산에 도착한 엘리야는 한 동굴 속에 들어가 밤을 지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야,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10.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저는 언제나 제 힘을 다해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제단을 부수고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죽였습니다. 살아 남은 예언자는 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저까지 죽이려 합니다.” <쉬운성경>
 



호렙산에 도착해서 엘리야는 굴속에 들어가 하루 밤을 지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왜 여기에 있느냐?” 두 가지 중 하나의 의미겠죠?
-‘왜 동굴 속에 있느냐?’  아니면 ‘왜 호렙 산에 와 있느냐?’
잠시 후에 나오라고 하시는 것을 볼 때 왜 동굴 안에 있느냐는 말씀인데, 동굴은 피할 곳이죠. 비와 동물과 추위를 피할 곳. 엘리야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피하지 않았습니다.

왜 여기 있느냐는 하나님의 물음은 엘리야의 심리적, 영적 상태를 묻는 질문입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닙니다. 이어서 하실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를 훈계하는 부모의 질문)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 예수님)

● 엘리야나 나나, 오십보 백보
10절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위로 후에도 여전히 두려움과 절망이 담긴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 중에 응답받고 위로 받지만 여전히 불안한 우리와 똑같습니다.
450, 850:1의 승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을 하나님이 하실 일을 생각하지 못한다. 두려움과 불안함이 눈을 가려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절망적인 것 뿐이다.(물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빠진 베드로)
-절망의 이유를 볼 것인가, 하나님으로 인한 희망의 이유(감사제목)을 찾을 것인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위대한 인간은 없다. 위대한 일에 사용 받는 순간이 있을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누구나, 부족하고 연약하고 모자란 나도 하나님에 붙잡혀 살아가면, 성령충만해서 살면 위대한 삶을 살게 된다.

● 세미한 음성
하나님은 엘리야를 나가게 해서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크고 강한 바람을 보게 하시고, 지진이 나고, 불을 보게 하셨지만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불 후에 세미한 소리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바람과 지진과 불은 보통은 하나님의 나타나실 때 따라오는 현상이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은 안 계셨다. 그 후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세미하다는 말은 원어의 뜻으로는 조용하고 부드럽다는 말이고, 한자말로는 작고 약하다는 말이다.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수 있는 소리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 힘을 얻어 새로운 사역에 임한다. 
-하나님의 음성은, 계시는, 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그 사건은 놀랍고 신기한 일과 함께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이 본질이 아니다. 우리가 만약 확실한 믿음을 위해서 어떤 놀라운 증거를 구하고 있다면 초점이 조금 잘못 맞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위해서는 사람에 따라 확실한 증거, 놀라운 일을 보여주기도 하신다. 하지만 그래도 그 놀라운 일이 본질이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똑똑히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인의 삶, 요즘 우리의 삶은 얼마나 복잡하고 놀랍고 시끄럽고 말이 많은가? 하나님의 음성을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을 정도다. 우리의 삶의 고민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는 소음이 된다. 우리는 엘리야처럼 세미하든지 우렁차든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 그곳에 생명이 있고 길이 있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고 놀라운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불안 앞에서는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볼 때에 이 순간 후에 엘리야는 다시 하나님의 사역에 열정을 쏟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직전까지도 엘리야는 두려움과 불안함에 절망의 끝에 있었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어려움, 절망, 불안 그것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가 알던 알지 못하던 하나님은 내게 좋은 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이것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내가 모르지만, 지금은 몰라서 힘들고 답답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지금은 어렵고 힘든 이 문제가 오히려 감사의 제목이 되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배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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