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N 목회리더십연구소(가평 필그림하우스)의 설교클리닉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찍힌 사진도 있네요. 예쁘게 나온것 없습니다.

 

필그림하우스 시설이 아주 좋고, 식사도 맛있고, 무엇보다 세미나가 유익했습니다.

목회자라면 평생 숙제인 설교, 교회에서 배려해주셔서 한국에까지 설교 세미나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해외에서 가려니 일정도 맞아야 하고, 정보도 많지 않아서, 이동원 목사님 이름을 보고 신청했습니다.
신청하면, 설교문을 써서 보내라고 하는데, 이거 잘써야 합니다. 모든 참석자들 앞에서 전체 설교를 해야하고, 정한 시간이 되면 중간에라도 끝내야 합니다. 저는 결론부까지 들어가서 마무리를 못하고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동원 목사님의 설교 클리닉은 주제설교가 아닌, 이동원 목사님 스타일의 강해설교를 기본으로 하는 세미나입니다. 이걸 모르고 원고를 써서 보냈고, 기본 이해가 별로 없는 상태로 참석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물론 그래도 배울점은 많았습니다.

내주를가까이.o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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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를가까이.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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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원주민 선교사님들과 함께

격년으로 열리는 캐나다 원주민선교 포럼에 참석했다.
선교사는 아니지만, 포럼측에서 단기선교를 진행하는 우리 캘거리 연합팀의 대표로 준선교사 자격으로 참석할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사실 사진에 있는 몇몇 분들과는 친분이 있다. 불러주셔서 감사하게 참석했고, 많이 배웠고, 다시한번 사명으로 가슴 뜨거워지는 시간이었다. 각각 드넓은 캐나다에 뿔뿔이 흩어져 사역하는 분들이다보니 동역자들이 함께 모여서 시간을 갖을때 가슴이 뜨거웠다.
캐나다 전역에 50여 분의 한인 원주민 선교사님들이 사역하고 계시지만 이번 포럼에 일정상 참여하지 못한 분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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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 성서론(김영봉) 링크

원본링크


Title Index of John Wesley's Ser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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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Wesley (1703-1791) founded Methodism. A prolific writer, he printed several volumes of his sermons during his lifetime. The published sermons either were rewritten from ones that he had preached or were written specifically for print.


We use Thomas Jackson's numbering for John Wesley's sermons (the text is from the 1872 edition).



정직한 그리스도인



2004년에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정직하겠습니다'라는 주제로 정직한 감리교인, 정직한 그리스도인 운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주제가 새겨진 스티커를 선풍기 커버 가운데에 붙여두었는데, 그 선풍기를 사용할 때마다 보여서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한 교단이 주제로 삼아 운동을 벌인 주제였으니 중요한 것이겠지요. 기독교인은 정직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아도 괜찮은가 스스로 질문을 해보면 어떤 답이 나오시나요? 저는 처음엔 당연히 정직해야지 생각이 들고, 믿음과 정직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기독교인이 얼마나 정직하지 않았으면 그런 운동을 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직에 대해서 성경은 뭐라고 말할까요? 믿음의 지혜를 가르치는 잠언 3:32에 보면,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라고 하여 정직한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또 잠언 12:22에도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라고 하여 거짓을 따르지 않고 진실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신 십계명의 내용에도 "거짓증거하지 말라"(출 20:16)고 하셨고, 가나안 진입을 앞둔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세가 전한 말씀인 신명기의 6:18에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정직이 복이 된다는 말이고 하나님의 백성은 그 길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에는 초대교회 때 거짓말을 했다가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행 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성경을 볼때 그리스도인이 정직해야 하는 것은 말하나마나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종교 신뢰도 조사에서는 교회가 늘 가장 낮은 순위로 나타나고, 사람들은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더하다고들 하고, 각종 비리 사건에는 기독교인이 빠지지 않는 것일까요? 교회 지도자들이 깊이 반성하고 책임을 느껴야합니다. 더불어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사람들에게 위로와 축복의 약속만 제공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교회의 목표가 양적인 부흥이 되면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직(正直)은 한자말인데, 바를 정, 곧을 직으로 씁니다. 바르고 곧다는 말입니다. 솔직(率直)하다는 말과 비슷한데, 솔직은 거짓이 없고, 숨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별 차이가 없는 말이겠지만 저에게는 두 단어의 어감이 좀 다릅니다. ‘솔직’은 숨기지 않는다는 의미가 더 크게 느껴지고 ‘정직’은 책임지는 자세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모든 일을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은 솔직한 것이고, 옳은 길을 가려고 노력하고, 그 일로 생기는 결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책임있게 행하는 것이 정직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속이지 않는다고,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한다고하며 있는 그대로 말해버립니다. 그리고 그 뒷일은 나몰라라 합니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 있는 그대로 말해버리는 것이 좋을까요? 잘못한 일을 물을 때, 솔직하게 내가 그렇게 했다고 인정만 하면 정직한 태도일까요?


정직에는 옳은 길을 따른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이 들어있어서 솔직하기 보다 정직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정직은 자기의 이익을 따르지 않고 옳은 길을 따릅니다. 정직은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 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고전 13:6) 정직은 하나님의 뜻을 기준 삼아 사는 것이며, 그 길을 선택해서 자신이 희생할 일이 생기더라도 기꺼이 가는 것입니다. 정직은 그저 거짓말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정직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정직하지 않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교인일 뿐입니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처럼 보여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정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정직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손해보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용기가 있어야 정직할 수 있습니다. 정직해야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만 얘기해서 우리가 정직해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정직한 삶이 나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알 때 가능한 일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습니다. 더 큰 유익은 천국의 보화를 쌓게 됩니다.(눅 12:33) 정직은 세상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영혼과 영생에 대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유한한 세상의 일과 영원한 영혼의 일을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은,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죽어서도 좋은 것을 갖겠다는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일이 다가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 가치를 알고 세상에서 영원을 살겠다는 믿음입니다. 세상의 가치가 천국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가치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정직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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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그리스도인


 ‘뱀파이어 크리스천Vampire Christia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Dallas A. Willard가 사용한 용어입니다. ‘뱀파이어 크리스천’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자가 되어 순종하는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람처럼 보이지만 흡혈귀가 사람이 아니듯이 성도처럼 보이지만 ‘뱀파이어 크리스천’은 온전한 성도가 아닙니다.

 교회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감동시키기는 커녕 안믿는 사람들보다 더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해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교회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처음 교회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오셨고, 죽으셨고, 다시 사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주목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좋아 보였고, 부럽고, 동참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의 역사에서 교회는 세상에 빛이 되어 왔습니다. 의료와 교육, 복지 사업을 통해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알려줬고,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많은 역사의 순간에서 교회의 전한 바는 억눌린 사람들에게 진정한 복음이 되었습니다. 약자로 희망 없이 살던 인생에 자유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속물스럽고 더 탐욕스러우며, 예수님의 기준이 아닌 세상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 이하의 집단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뱀파이어 크리스천 교회가 딱 맞는 이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 시대의 상식보다 못해서일까요? 그럴리가요.


이 현상은 심각합니다. 이것은 교회 역사에 있었던 박해와는 다른 일입니다. 박해는 믿음 때문이었고, 그 믿음을 지키느라 받은 것이지만, 지금의 문제는 오히려 교회가 믿음의 길이 아닌 길로 가기에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조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믿는자들이 모두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도 없는 것이고 예수님이 전하신 천국복음에도 없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욕먹었던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돌아보면 문제는 명확합니다. 교회가 그 근본 가치인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입으로만 외치기 때문입니다. 또 신앙생활의 열심이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서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한 수단이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일 너머를 보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만나기 어렵습니다.


교회의 가치와 기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시선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와 목회자들과 교인들에게 좋은 것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큰 교회는 교인이 많은 교회고, 그 교회의 목사님이 큰 목사님이고, 그런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면 어쩐지 자부심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요? 

'교회만 그러냐? 다른 종교는 더하다.' 이렇게 변명할 수도 있습니다. 더한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종교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시대가 악해서 그런것일까요? 아닙니다. 다른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어떤 종교든 기득권이 되면 타락했고, 번영기를 거치면 그 생명력은 희미해졌습니다. 그것이 종교의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을 이루고 형식화되고, 사람들의 요구에 맞게 세속화되고... 결국 종교를 타락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죄성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생겨먹었습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주면 그곳에 많은 수가 모이고, 그것이 더 가속화되면서 결국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그것이 그 종교의 가치가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까지 인정이 된다면,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요? 비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얘기는 사실 교회좀 다닌 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고, 심지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할수 있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 질문이 남습니다.

1517년, 501년 전에 독일에서 마르틴 루터를 통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새로운 교회인 개신교가 생겼습니다. 500여 년이 지난 지금 개신교는 숫자와 크기, 물질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고 있고 어떤 이들은 그런 흐름에 반하여 교회가 개혁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일반적으로 종교가 500년이 지나면 개혁해야 할 만큼 타락하게 된다는 얘기도 합니다.


새로운 교회가 필요할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저는 여전히 지난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고, 지난 시대의 시스템 안에 있습니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새로운 교회, 새로운 목회를 꿈꾸며 길을 찾아야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기존의 것을 반대한다고 옳은 것이 아니고, 지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는다고 선이 아니라는 생각도 합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다만 그 흐름이 일어나는 쪽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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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싱크 사용하기




나는 리눅스 유저다.

어쩔수 없이 윈도우즈도 사용한다.

그리고 자료 보관과 백업, 동기화를 위해서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한다.


드랍박스와 원드라이브를 사용하는데

드랍박스는 개인용 자료 동기화에 사용하고

원드라이브는 업무용 자료 동기화에 사용한다.

그래서 동시에 두 클라우드 동기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윈도우즈에서는 드랍박스와 원드라이브 모두 싱크 클라이언트(동기화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지만

리눅스에서는 드랍박스만 사용할 수 있다.

리눅스를 더 자주 사용하는데,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그래서 고민이었고, 검색해보니 리눅스에서 원드라이브를 쓰는 몇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불편해 보였고 그러던 중 

오늘 갑자기 기발한 방법이 생각났다. 바로 시도했고 결과는 성공이다.

지나고 보니 너무나도 당연하고 쉽고 간단한 방법인데,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다.

원드라이브는 원드라이브로 싱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면 되는 것을...

그 과정을 소개한다.


1. 첫번째, 동기화 로컬 폴더를 외장하드로 지정한다.


이건 하드 디스크 공간에 동기화 파일들이 중복(기본 설정으로 사용하면 윈도우즈에 동기화한 폴더가 있고, 리눅스로 오면 또 따로 동기화한 폴더가 있어야 했다.)을 피하기 위해서 전에 설정한 것이다. 외장 하드가 아니더라도 윈도우즈와 리눅스에서 동일하게 읽을 수 있는 위치에 설정하면 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윈도우즈로 부팅해서 싱크를 해도 한 위치에 파일들이 동기화되고, 다시 리눅스 부팅을 하면 또 같은 폴더에 엑세스 해서 동기화 하는 상태가 됐다.

이런 설정을 하지 않았다면, 타 클라우드 싱크 프로그램으로 원드라이브를 싱크하는 일은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2. 두번째, 리눅스에서 메가 클라우드 싱크 프로그램을 설치한다. 그리고 원드라이브 폴더를 동기화 폴더로 지정한다.


이미 드랍박스는 윈도우즈와 리눅스에서 동일하게 동기화가 작동중이었다. 드랍박스는 리눅스도 지원하기 때문이다.

그 상태에서 리눅스로 부팅해 사용할 때 원드라이브에 동기화 중인 파일에 접근은 가능했다. 외장하드에 있으니까. 하지만 동기화는 다시 윈도우즈로 부팅을 해야 작동하는 상황이었다. 아니면 좀 더 번거롭지만 수정한 파일을 웹으로 접속해서 수동으로 업로드하는 방법도 사용했다.


그러던 중 "원드라이브 파일이라고 원드라이브로만 싱크가 되는건 아니잖아!"하는 깨달음이 왔다.

맞다. 외장하드에 있는 원드라이브 싱크 폴더를 다른 싱크 프로그램으로 동기화 하면 되는거다. 그러면 웹상에 두군데에 같은 동기화가 생기니 자료 보존을 위해서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예전에 사용했던 뉴질랜드 회사라던. 50G를 무료로 제공하는 메가 클라우드를 떠올렸다.

당장 홈페이지(http://mega.nz)를 찾아갔다. 확인해보니 리눅스용 싱크 클라이언트를 제공한다. 그것도 배포판별로 다양하게

바로 설치하고, 예전에 사용한 아이디를 복원하고, 싱크 폴더를 사용중인 외장하드 원드라이브 폴더로 지정했다.


두둥!!! 업로드를 마구 진행한다. 문제없이 모든 파일 업로드 완료.


사용해봐야겠지만 별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는 방법을 정리해보면

1. 윈도우즈 사용시 dropbox와 Onedrive를 사용해서 개인 자료와 업무용 자료를 실시간 동기화를 한다.

2. 리눅스 사용시 dropbox는 리눅스용 싱크 클라이언트로 똑같이 동기화되고 Onedrive파일들은 Mega Cloud를 이용해서 동기화 한다.

3. 덧붙이면, Tomboy 메모를 사용하는데, 자료 폴더를 Dropbox안에다 지정해서 위의 방법으로 자료가 동기화 되는 모든 컴퓨터에서 동기화된 메모를 사용한다. 


이 방법으로 사무실에서, 집에서, 밖에서 따로 자료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동기화된 자료를 쉽게 쓸수 있고, 다른 컴퓨터를 사용해도 웹으로 접속해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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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내용 추가

 위의 글을 작성할 때는 윈도우즈와 리눅스를 듀얼부팅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윈도우즈에서 onedrive를 사용했다. 저 방법의 목적이 윈도우즈에서 원드라이브로 동기화하는 자료를 리눅스에서도 동기화하는데 있었다.
 지금은 원드라이브를 아주 사용하지 않는다. 메가 싱크가 윈도우즈와 리눅스를 다 지원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듀얼부팅으로 한컴퓨터에서 두 OS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여러대의 컴퓨터를 쓰는데, 윈도우즈도 있고 리눅스도 있다. 지금 컴퓨터 세팅의 기준은 윈도우즈와 리눅스가 별 차이 없게 설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도에 맞게 프로그램을 고를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윈도우즈와 리눅스용이 다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오피스는 Libre office를 사용하고 그래픽 편집은 Gimp를 쓰고, 클라우드는 메가싱크를 쓰고 이런 식이다. 모두 리눅스와 윈도우즈용이 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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